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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죽음 체험기

  • 관리자
  • 2025.11.27
  • 45

죽음 체험기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영탁


일   자: 2025 10 23() 오후 1:30~3:30

장   소: 백석웰다잉힐링센터(천안시 소재)



몇 년 전부터 한 번쯤 다녀오고 싶었던 죽음체험’. 백석대학교에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함께 갈 동행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 세계미래포럼 조찬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볼 생각이었다. 20명 이상이 신청하면 단체를 위한 별도 체험 시간을 마련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인원을 모집했지만, 뜻밖에도 20명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개별 참가 방식을 택했다.

 

다행히 네 명의 동행자가 함께하기로 했다. 모두 나보다 열 살가량 어린 후배들이었다. 새삼 느낀 것이지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삶은 죽음으로 완성되고, 좋은 죽음이야말로 좋은 삶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하는데도 말이다.

 

서울에서 오전 10시쯤 출발해 천안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 무렵이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센터에 도착하니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참가 인원은 약 50. 강의실 입구에는 죽음을 직면해야 삶이 보인다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그 한 줄이 이미 오늘의 목적을 모두 말해주는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이 공간을 감싸고, 잔잔한 명상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낯선 얼굴들로 가득했지만, 곧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참가자의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나이도 생각보다 젊어 보였다. 대체로 60, 이러니 요즘 세상은 여러모로 여성이 주도하는 시대라 하는구나 싶었다.

 

이윽고 본격적인 체험이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영정사진 촬영이었다. 간편한 옷차림으로 갔기에 별문제는 없었지만, 머리카락을 정리할 빗이나 거울이 없어 손으로 대충 가다듬었다. 사진사가 연신 웃으세요라고 말한다. 조금 있으면 관 속에 누울 사람에게 웃으라니, 그 말이 어쩐지 낯설고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그래도 웃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웃음이라기보다는 어색한 미소였다. 주변 사람들도 대체로 멋쩍은 표정이었다. 생의 마지막 사진을 미리 찍는 그 순간, 누구나 마음 한켠이 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강사의 죽음에 관한 강의가 있었다. 30분 동안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같은 말이지만, 우리는 한쪽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다른 한쪽에는 무심한 채 살아간다. 강사는 그런 우리를 일깨우듯 ‘9988234’라는 숫자를 강조했다. 아흔아홉 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프고 사흘 만에 간다는 뜻이라 했다.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은 누구나 동의하는 인생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잠시 후 자리를 옮겨, 관이 줄지어 놓인 공간으로 이동했다. 앞에는 작은 소반 위에 종이와 펜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하얀 수의가 정갈하게 접혀 있었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은 뒤 유언장을 쓰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앞에는 방금 찍은 영정사진, 옆에는 관과 수의. 그곳에서 쓰는 유언장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이었다. 문득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마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가족과 친지, 친구, 그리고 함께했던 사람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오십 명 남짓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을 되짚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마음속에 떠올랐을 장면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 거구나.” 그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켜주며 손을 잡아줄 사람, 볼을 스치며 작별을 고할 사람은 결국 가족일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며 어떤 말이 떠올랐을까.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인생의 마지막에 남기는 말은 결국 이 세 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드디어 수의를 입는 시간이 되었다. 옷은 조금 크고 헐렁했지만,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허리끈을 느슨하게 매자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듯했다. 서서히 관 속으로 들어가 천천히 몸을 눕혔다. 길이는 충분했지만 폭이 좁아, 두 팔을 자연스레 배 위로 모았다. 잠시 후 관 뚜껑이 닫히고 세상은 완전한 어둠 속으로 잠겼다. 이어서 들려오는 쾅쾅 하는 못질 소리.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떤 상황인가? 갑자기 닥친 낯선 정적 속에서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나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만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관 속의 고요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아늑한 안식처와도 같았다. 완전한 어둠, 오직 숨소리만 들리는 좁은 공간.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한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이대로 떠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마음 한켠이 저려 왔다. 가족과 친지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리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것이 인생인데, 결국 누구나 이렇게 가는 것인데, 왜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다투고, 욕심내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사는가. 그렇게 애쓰며 움켜쥔 것들이 결국은 다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어차피 이렇게 끝나는데.

 

얼마 후 관 뚜껑이 열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세상은 완전히 다른 색으로 보였다. 나는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세상의 소리, 공기의 냄새,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까지도 모두 새롭게 느껴졌다. 누군가 말했다. “지금부터는 당신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 말이 귓가에 오래 남아 잔잔히 울렸다.

 

체험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 오길 참 잘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삶이 왜 소중한지, 왜 죽음이 삶의 일부인지, 그리고 왜 잘 죽는 법을 아는 것이 곧 잘 사는 법인지를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마음 한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가족과 친지를 더 많이 이해하며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죽음을 체험해보았으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잘 죽는 법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잘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 진리를 조금은 깨달은 덕분일까, 마음이 한결 푸근해졌다. 어쩌면 마음의 부자가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상처를 받거나 주기도 하였다. 문제는 상처를 입는 것보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계속 아프게 하는 상처인데도, 우리는 이런 상처를 쌓으며 살아가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용서를 미루는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해 벌을 가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용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부러진 뼈를 치료하면 부러지기 전보다 더 튼튼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와 삶도 용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더 강해질 수 있다.

 

이런 마음이 희미해질 무렵이면 다시 한 번 이곳을 다녀가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씩 속세에 찌들어가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을 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다 보면 혹시라도 영생으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까지 해본다.

 

그래서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죽음체험, 꼭 한 번 해보시라.” 처음엔 두렵고 낯설지 모르지만, 그 경험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안타까운 일이 많지만, 어쩌면 자신의 죽음에 무관심한 것, 그래서 자기 일로 여기지 않고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안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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