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분열과 증오의 시대
분열과 증오의 시대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영탁
(2025. 5. 30)
1. 인간의 본성
사람은 이성적 존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오히려 겉으로는 점잖고 합리적인 척하면서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시기, 질투, 불안, 분노 같은 감정들이 들끓고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빙산에 비유하며, 무의식이 의식의 영역보다 훨씬 더 크고 지저분하며 추잡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겉으로 내보이는 생각과 행동은 단지 얇은 껍데기일 뿐이며, 진짜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그 밑에 숨어 있는 본능과 충동이다.
지금의 사회는 그 무의식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위태롭다. 예전에는 그래도 겉으로라도 도덕이나 예의를 중시했지만, 이제는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얼마든지 모략하고 배척하며, 거짓도 서슴지 않는다. 익명 뒤에 숨어 서로를 향해 혐오를 쏟아내고, 남이 망하는 걸 보며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것이 인간 내면의 어떤 고약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모든 병의 시작은, 그 무의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데 있는지도 모른다.
2. 아쉬운 先義後利의 정신
요즘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인도, 활동가도, 평범한 시민들도 저마다 정의를 외치고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그 말 뒤를 따라가 보면, 정작 본인은 변하지 않으면서 남만 바꾸려는 경우가 많다. 내 방식이 옳다고 믿고, 상대가 틀렸다고 단정하며,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먼저 선을 긋고 벽부터 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유불리를 앞세우는 선의후리(先義後利)의 정신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간다.
진짜 변화는 자신을 감추고 타인을 몰아붙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다. 나부터 한 걸음 물러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때 시작된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던지고,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씩 움직인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진심이라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이 다르고, 말투가 다르고, 살아온 길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귀를 열 수 있을 때, 그때야말로 비로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변화는 거창한 명분보다, 낯선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겸손한 태도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3. 꼬인 것을 푸는 것이 정치인데~
정치는 원래 사회의 실타래를 푸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갈등을 조율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모두가 조금씩 손해 보더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그런데 요즘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마치 실타래를 더 꼬아야만 존재감이 생기는 줄 아는 듯 행동하고, 정당은 문제 해결보다 프레임 싸움에 몰두한다. 국민이 원하는 건 해결인데, 정치권이 보여주는 건 끝없는 갈등과 책임회피 뿐이다.
양당은 마치 민주주의와 법치제도의 파괴 경쟁이라도 벌이고 있는 듯하다. 한쪽은 검찰권을 정치에 활용하고, 다른 한쪽은 입법 폭주를 정당화하며 서로를 향해 ‘적폐’와 ‘반헌법적 세력’이란 낙인을 찍는다. 더욱 아이러니한 건, 여러 비리에 연루된 자가 선두를 달리고 있는가 하면, 위헌으로 판정 난 비상계엄 때문에 치르게 된 선거에서 그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되었거나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는 비열하고 위선적인 행태가 가관이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 입장에서는 정치가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끝없는 권력 싸움의 도구로만 남아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치는 꼬인 것을 푸는 기술이자 용기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인들은 그 기술도, 그 용기도 갖추지 못한 채 자기 진영의 이익만 계산한다. 국민은 점점 피로해지고, 정치혐오는 일상이 되어간다. 정치가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문제 그 자체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4. 행동하는 양심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기울어질 때, 침묵은 결국 그 잘못을 방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처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에 서게 된다.” 불의를 보면서도 침묵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잘못을 보면서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조금씩 어둠 쪽으로 기울게 된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무게중심이 무너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더 이상 공정과 정의를 기대할 수 없는 판결이 이어지고, 사법부마저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결론이 갈린다. 한때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던 법원이 어느새 진영의 도구가 되고, 판결문조차 누구 편이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이처럼 사회적 신뢰가 무너질 때, 시민의 양심이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시민들의 양심도 ‘나 하나쯤은’이라는 생각 속에 입을 다물고 있다.
행동하는 양심이란 거창한 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내편이라도 그른 건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태도, 잘못된 말에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할 수 있는 용기, 남들이 침묵할 때 한마디 할 수 있는 배짱,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침묵이 편하고 침묵이 안전하다고 느낄수록, 우리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5. 어디로 가고 있나
우리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사회는 점점 더 파편화되고, 대화보다는 대결이 일상화 되고 있다. 정치는 타협의 기술이 아니라 투쟁의 언어를 구사하고, 언론은 진실보다는 자극에 집중하며, 시민들마저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는 태도로 돌아선다. 모두가 말은 하지만, 서로의 말은 듣지 않는다. 그렇게 공감은 사라지고, 이해는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방향을 잃는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공동체가, 각자도생과 적대의 길로 분열되어 가고 있다. 지금의 정치는 국민 모두를 위한 설계가 아니라, 소수의 이익을 위한 전략처럼 보인다. 그 안에서 중요한 정책은 사라지고, 오로지 적을 만들고, 그 적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만이 남는다. 선거도 점점 정쟁의 연장이 되어가고, '더 나은 사람'을 뽑기보다는 '덜 나쁜 사람'을 고르는 일이 되고 있다.
이런 흐름이 고착화된다면, 우리는 결국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밀려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문화다. 지금처럼 모든 문제를 진영으로 나누고, 이기고 지는 게임처럼 여기는 한, 그 문화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여,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6.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은 단순한 갈등의 문제가 아니다. 양당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짓밟고 있다. 누군가는 권력을 남용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법을 도구 삼아 상대를 짓누른다. 정치의 본령은 실종되고, 시민을 위한 고민보다 정략적 판단만이 남아 있다. 이런 정치 구도 속에서 우리는 점점 선택지를 잃어가고 있다.
이번 선거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희망의 선택이기보다, "그래도 덜 거덜낼 쪽은 어디인가?"를 고르는 판단처럼 느껴진다. 어느 후보가 꿈을 말하는가 보다, 어느 후보가 거짓이 더 적은가를 따져야 할 판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선거란 시민의 의지로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지, 폐허 속에서 덜 부서진 벽을 고르는 작업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특정 진영에 기대기보다는 원칙과 상식에 충실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지의 이유가 분노나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되며,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진심어린 성찰이 따라야 한다. 진영 너머에서 공통의 기준을 회복할 수 있다면, 정치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7. 맺는 말
우리는 지금, 서로의 얼굴을 외면한 채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진영의 프레임 속에 갇힌 채 상대를 악마화하며, 끝없는 분열의 골짜기를 걷고 있다. 어느새 선과 악의 경계는 흐려졌고, 옳고 그름보다는 내 편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다. 정치와 제도는 갈등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고, 사법부조차 신뢰를 잃어가며, 이제는 법치의 이름마저도 진영 싸움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바뀌려 하지 않고, 타인만을 고치려 한다.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말투,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귀를 열 때에야 비로소 사회는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목소리를 더 키우는 일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말하고, 용기 있게 듣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침묵을 넘어서는 실천이 필요할 때이다.
분열과 증오의 시대를 멈추기 위한 일은 거창하지 않다. 현란한 말 대신 진심 어린 질문을 던지고, 내 편의 잘못도 똑같은 기준으로 바라보며, 나부터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선의후리’의 정신이고,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이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정점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 고령화에다 멈춰버린 경제성장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또한 미국, 중국, 북한 등 바깥 세상도 갈수록 어둡고 불투명하다. 거기에다 박근혜-문재인-윤석열로 이어지는 국가 리더십을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리고 그 방향을 바꿀 마지막 기회 앞에 서 있는 지금,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