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역사를 보는 눈
역사를 보는 눈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영탁
2024.11.26
1.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적 사실이 후세들에게 산 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이다. 과거에 빛나거나 좋았던 점은 제대로 계승·발전시키고, 잘못된 점은 그런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지침이 될 수 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대화를 통해 소중한 경험과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계속 되풀이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야말로 미래 창조의 좋은 길잡이가 아닐 수 없다.
2. 역사는 복수(複數)이다.
역사의 인식에 정답은 없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보는 사람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서로 다른 견해가 대립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진보 대 보수, 무신론 대 유신론을 보면 서로 상반되지만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토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역사 교과서는 대개 국정이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국정 교과서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한 역사적 사실을 정부가 한 가지로 정해놓고 학생들에게 따라오도록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역사에 대한 논쟁은 도를 넘은 지 오래이다. 특히 과거 어두웠던 한일 관계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각 분야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각자의 견해를 표출하는 정도를 넘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분노를 느끼기까지 한다. 내 생각과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을 상종 못 할 나쁜 사람으로 여기거나, 동지가 아닌 적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3. 사고와 판단의 객관성 문제
차제에 인간이 어떤 사물이나 사실에 대해 판단할 때 과연 합리적인지의 문제를 살펴보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필자는 겉과 속이 다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는 게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찍이 데일 카네기는 「사람은 자신의 외면보다는 내면의 욕구와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고 하였다. 천사 같은 얼굴에 악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사고에 대한 얘기에서 세계 3대 심리학자에 속하는 프로이트의 「의식과 무의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빙산에 비유하여,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그 아래 숨겨진 무의식이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지배한다고 한다. 무의식의 내용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으며 억압된 감정, 충동, 원초적 욕망 등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할 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가 강 이편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너는 강 저편이어서 죽이면 애국자가 된다.」(파스칼)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동해 바다를 일본에서 보면 서해이다. 그런데 그걸 일본해라고 하는 일본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한국해인 데도 말이다.
4. 구세주 콤플렉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가 과거의 어떤 지도자를 거론하며 "이런 사람이 나와서 제대로 질서를 잡아야 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천만에, 안 될 말이다. 여기서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말한 구세주 콤플렉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구세주 콤플렉스란 맨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바꾸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말한다. 우리 기억에 생생한 강력한 리더십을 불러와야 한다는 생각이 맞지 않는 것은 과거에 통용되던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지금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토플러에 의하면 제1물결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제2물결에서는 가장 허약한 지도자만도 못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과거의 경험이나 사례에 비추어 현재나 미래를 판단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분명해진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동시에 사람 살아가는 방식도 변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겠다.
5. 볼품없는 역사 논쟁
우리는 오랫동안 역사 논쟁으로 서로 편이 갈리고 나라 전체가 시끄러워지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역사는 사람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도 자기 주장을 고집하며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마구 공격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따라 누가 뭐래도 요지부동의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주변에도 흔히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 대해서는 무조건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최근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문제 외에도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을 비롯해 친일파 논쟁은 끝이 없다. 한일 합방 이후 우리들의 국적을 두고 서로 간에 얼굴을 붉힌다.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뛰지 않았냐고 하면,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없어졌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공격한다. 친일인명사전을 비롯한 친일파 논쟁도 도를 넘는 행위가 아닌가? 운동 경기를 해도 일본은 꼭 이겨야겠다는 우리의 심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굴종적이다. 중국과는 오랜 역사를 두고 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속국의 위치를 벗어난 적이 별로 없다. 가장 비참한 일은 아마도 병자호란 중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仁祖)가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세 번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한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이 아닐까? 근래에 와서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사건(2008), 중국 어선과 해경 사건(2011), 사드 보복(2016~), 중국 대사의 발언(2023)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마다 언론은 물론, 정치권, 심지어 정부까지 별다른 대응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만일 일본이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우리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6. 미래 준비의 중요성
결국 과거사인 미래를 두고 시비하는 것 보다는 그러한 역사를 거울삼아 어떻게 미래설계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미래는 제쳐두고 과거에만 매달려 있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누가 어떻게 역사를 이해하든 역사는 과거이며 불변이다. 그런데도 미래준비에는 관심도 없이 지난 일을 두고 시비를 계속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 준비 없이 미래를 맞이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이할 미래 세상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과거의 경험이나 역사에서 얻은 지식은 별 쓸모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과거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견해도 있다. 좀 지나친 면이 있지만 너무 과거에 함몰돼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라고 본다. 차제에 지나간 역사를 두고 편을 갈라 싸우기 보다는 미래설계의 지침으로 활용하는 지혜와 도량을 키워나가도록 해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