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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인생 종반전이 중요한 이유

  • 관리자
  • 20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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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종반전이 중요한 이유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영탁


 

1. 시작하면서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한다. 이런 인생을 3단계로 나누어보자. 우선 초반전, 30세 이전에는 대학을 나오고 군대를 간다. 그리고 나서 30여년 간 사회생활을 하는 중반전이 전개된다. 60세 전후에 퇴직을 하고 나면 종반전이 시작된다. 문제는 이 종반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어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는 점이다.

평균수명이 아무리 늘어나도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며 언젠가는 죽게 된다. 이처럼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은 참으로 절묘한 의미가 있다. 만일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온갖 추한 면모가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영생이 가능한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대신 유한한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면 언젠가 죽을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옷깃을 여밀 수 있다고 본다. 한 번뿐인 인생, 함부로 할 수 없는 생의 소중함이 여기서 나오지 않겠는가.

 

2. 성공한 인생이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에 있다고 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순간적인 쾌락이나 물질적 소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평생 덕스러운 활동을 통해 성취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행복을 마다하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돈이나 권력을 쫓아다니는 것도 결국은 그것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여기서 착각이 생기게 된다. 마치 돈이나 권력이 행복의 수단에서 나아가 그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행복의 기원’(서은국 저)에서는 다른 견해가 나온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다. 행복이 삶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다윈이 한 수 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행복과 생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 구체적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오랜 생존이 무조건 좋은지도 논란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초반보다 중반, 나아가 종반으로 갈수록 더 좋아지는 인생을 성공한 인생으로 보는 건 어떨까? 평생을 무난하게 살았어도 전후반이 비슷하거나 후반이 전반보다 못한 경우보다는 후반에서 종반으로 갈수록 모양새가 좋아진다면 그런 인생이 진짜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오죽하고 옛말에 고종명(考終命)을 오복의 하나로 꼽았을까.

 

3. 인생 종반전 준비

초반이나 중반보다 중요한 종반, 인생을 결산하고 마무리하는 종반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정답 중 하나는 우선 준비의 시작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심지어 나이 든 사람들 중 대다수가 노인이라 불리는 것은 물론이고 영어의 시니어(senior)도 싫어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르신이라고 하기도 하고 미국은 50+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나이 듦을 외면하는 데서 나아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기피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건 각자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그래서 삶은 주어진 거라고도 한다. 그러나 죽는 건 다르다. 늙어서 죽어가는 생의 마무리는 각자의 의지대로 가능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연장선에 있다. 평생토록 인간답게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이 좋은 인생이라면 그것의 완성은 좋은 죽음에 있다고 본다. 잘 죽는다는 것은 잘사는 것의 성공적인 마무리이다.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과 좀 더 친해져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생 종반에 해야 할 일을 추려보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리고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일들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런 일들은 조금이라도 나이가 덜 들었을 때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나이 들었다고 포기하는 건 더 나쁜 일이다. 준비와 정리 없이 삶을 마감하는 것처럼 무책임한 일도 없다고 본다.

 

< 준비사항>

*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 소지품 정리

* 주거 형태의 선택

* 증여 및 상속 설계

* 유언장 쓰기

* 자서전 쓰기

* 다큐 영화 만들기

* 묘지 준비

* 생전 장례식 준비 등

 

4. 생의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네 가지 고통이 생노병사(生老病死)이다. 분명 죽음에는 고통이 따른다. 사람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중에서도 노년에 병세가 깊어져  회복이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이 크다.

누군들 행복하게 살다가 때가 되면 존엄하게 죽겠다고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도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부착 등이 흔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의학적으로 아무런 효과 없이 고통스러운 임종과정만 연장시키고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존엄사를 위한 사전 조치로 우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필요하다. 이는 물론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과잉 진료나 단순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그러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본인의 의지가 확고해야 하는 것 말고도 담당 의사나 가족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는 인간성을 박탈당한 동물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아울러 조용한 임종실은 없고 화려한 영안실만 있는 현실, 이러한 의료현장은 그대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5. 맺는말

앞으로의 사회는 노인사회이다.  노인이 많아지면 결국 그에 비례해서 노환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데 있다. 아무리 현대의학이 어려운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의 수명을 늘려나간다 해도 죽음 자체를 해결하진 못한다. 그래서 어떻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지는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 바, 우선 국가는 관련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의료계는 지금까지의 치료행태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기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일이다.

어떻게 죽을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말이라고 한다. 죽음이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고도 한다. 결국 좋은 삶이 좋은 죽음을 가져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특히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매달리지 않고 인간답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자면 사전에 제대로 된 준비와 주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것이 절실한 이유는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더욱 절실한 이유는 그러한 죽음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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